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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9일 금요일

[현장르포] 기자의 ‘카지노’ 현장체험 1주일


도박과 탐욕의 ‘막장’ 강원랜드 메인 카지노
(전문게재)

먼저 1만원을 베팅(betting)하라. 이기면 계속 1만원씩만 베팅하면 된다. 만약 진다면 2만원, 계속 지면 4만원, 8만원, 16만원 이렇게 더블로 올려가며 베팅하라. 언제라도 이기면 1만원 베팅부터 다시 시작하라. 그러면 무조건 몇 만원은 따게 돼 있다.”

서울에서 강원랜드로 와 지금껏 계속 ‘살고’ 있다는 전직 건설업자 A(45)씨는 강원랜드에 첫선을 보인 초보 ‘죽돌이(죽치고 앉아 떠나지 않는 사람)’ 지망생인 나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딴은 그럴 것 같았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더블 베팅(double betting)’. 만약 1만원을 걸어 잃었다면 다음판에 2만원을 걸어 이기면 결과는 1만원 잃고 2만원 따는 것이니 합계로는 1만원을 따게 되는 것이다. 재수없이 16만원을 걸어야 되는 판까지 간다고 해도 결국 이때 이기면 15만원(1만+2만+4만+8만원)을 잃고 16만원을 따게 되는 것이니 1만원 남는 장사 아닌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엉거주춤 뒤에 서서 칩을 던져 넣고 있던 ‘블랙잭’판을 떠나 ‘다이사이’(게임 방식은 박스기사 참조)판으로 옮겨갔다. 외국 카지노 몇 군데에 구경삼아 가서 블랙잭 몇 판 해본 것이 카지노 경험의 전부인 나에게는 무척 생소해 보였지만 어차피 대소(大小)야 확률이 반반인 쉬운 게임처럼 보였다.

우선 수중에 있는 칩(chip·카지노에서 현금 대용으로 쓰는 ‘카지노 화폐’. 강원랜드에는 1000원권부터 500만원권까지 있다)을 세봤다. 36만원 정도가 남아 있었다. 1만원부터 16만원까지 연속 5판 더블베팅 할 수 있는 돈이었다. 처음 소(小)쪽에 1만원을 갔다가 잃었지만 다음판에 역시 소쪽에 2만원을 가 이겼다. 결국 1만원을 딴 것이다. 다음판에는 소쪽에 1만원을 가서 바로 승리. 순조로웠다.

“계속 더블베팅을 하다 적발되면 쫓겨날 수 있다”는 A씨의 충고에 따라 반대쪽에 있는 다이사이판으로 왔다갔다 하며 같은 방식의 베팅을 했더니 2시간 정도 지나자 10만원 정도를 땄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 8만원 베팅을 한 두 번이었고 16만원을 걸어야 하는 위기는 오지도 않았다. 8만원을 걸 때 ‘왜 대(大)만 나올까’하는 초조함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결국 소(小)가 이겼고, ‘그래 역시 확률은 과학이야’ 하는 자신감과 ‘아 이런 식으로만 매일 하면 막노동꾼 일당은 쉽게 벌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월 20일 밤 시작된 내 죽돌이 생활은 처음엔 이렇듯 희망적이었다.

강원랜드 메인 카지노에는 주소지를 전국 각지에 따로 둔 ‘주민’들이 2000명 정도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지노 하루 내방객의 50% 정도가 여가를 즐기기 위한 고객이 아닌 어느 정도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인 셈이다. 가족도 직업도 재산도 모두 내팽개치고 강원랜드 아니면 갈 곳이 없게 된 사실상의 노숙자들도 최소한 300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폐광 지역은 또 다른 막장과 이곳에서 영혼을 망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죽돌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정말 돈을 많이 따는 ‘프로 도박자’가 있을까, 있다면 비결이 뭘까를 알아보는 것이 죽돌이 생활을 시작한 이유다.

10만원을 따서 블랙잭판으로 돌아오자 A씨는 제법 수북이 쌓여 있던 칩들을 거의 다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내가 “형님 말이 맞았어요”라며 다가서자 반색을 했다. 내가 10만원을 땄다며 칩을 보태주려하자 사양하면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일어섰다. 고한읍이나 사북읍으로 내려가려는가 하고 따라가던 나는 A씨가 카지노호텔 식당으로 당당히 들어서는 것에 흠칫 놀랐다. 눈치를 살피면서 그나마 가장 싼 1만5000원짜리 메뉴를 시켰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과일에 커피까지 마셨다. ‘재산 다 들어먹었다면서 카지노 안에 공짜 커피도 얼마든지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설 때 내가 계산하려 하자 A씨는 “자네 아직 카드도 안 만들었구먼” 하면서 카운터에 카드를 한 장 내밀었다. 신용카드가 아닌 ‘플레이어 카드(Player’s card)’였다.

거의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강원랜드의 죽돌이들조차 대부분 호텔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비결은 이 카드. 칩을 산 금액과 게임을 한 시간, 평균 베팅액 등을 감안해 점수를 올려 주는 이 ‘마일리지(mileage) 카드’에는 수억원, 수십억원을 쏟아부은 사람일 경우 완전히 거지 신세가 됐어도 몇백만원어치가 적립돼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마일리지 금액은 카지노 호텔 내 식당, 사우나, 바 등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A씨는 “내가 강원랜드에 얼마를 퍼부었는데…. 강원랜드가 나를 당연히 먹여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식사 자리에서 왜 강원랜드에 왔느냐, 직장은 왜 잘렸냐, 가족은 어떻게 됐냐 등을 묻던 A씨는 “나는 이왕 버린 몸이지만 도박은 안 하는 게 남는 거다. 그러나 정 하겠다면 매일 10만원이고 20만원이고 따서 통장을 하나 만들어 저금해라. 그렇게 하루빨리 벌어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떠라”라고 충고해줬다. 그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려는 사람을 제대로 선도해냈다는 듯한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다가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픽 웃은 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런데 더블베팅으로 하루 따고 그 다음날 또 따는 놈, 또 목돈 만들어 나가는 놈, 한 놈 못 봤다.”

카지노로 다시 돌아와서 A씨 뒤에 서서 블랙잭을 했지만 다이사이판에서 다소 회복했던 칩을 거의 다 잃어갈 때쯤 허리와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서서 버티기 힘든 지경이 됐다. 사실 강원랜드에 오기 전까지 내 ‘카지노 경력’은 미국과 필리핀 카지노에 구경삼아 들러 블랙잭 몇 판 해본 게 전부였다. 그 몇 번의 경험 중에 몇 푼 안되지만 딴 적도 있었고, 100~200달러 정도씩 잃기는 했어도 그래도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쾌적한 환경에다 곳곳에서 라이브 공연이 열리고, 무엇보다 이곳저곳 옮겨다니면 찾을 수 있는 빈자리에서 편안하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원랜드는 메인 카지노가 개장한 후 게임장 면적이 5배 넓어지고 시설이 좋아졌다는 것 말고는 분위기는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몇십만원을 잃으면서도 자기 자리 없이 테이블 뒤에 서서 이쪽 저쪽으로 기웃거리며 베팅을 하고 카드를 살피는 ‘고통스러운 노동’을 해야 했다.

‘올인’ 때까지 ‘자리’ 안 떠

강원랜드에 오기 전까지 나는 블랙잭은 단순하지 않고 ‘합리적’인 게임이며, 나도 어느 정도 실력은 된다고 믿고 있었다. ‘바카라’는 한 번 베팅하고 누가 이기는지 보고만 있으면 되는데, 블랙잭은 카드를 더 받을 것인지, 패를 둘로 분리(split)할 것인지, 좋은 카드를 받았을 때 베팅액을 배로 늘릴 것인지, 보험(insurance)을 들 것인지 등 선택해야 할 경우가 많은 게임 아닌가. 그런데 뒤에 서서 따라가는 사람은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없이 앉은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해야 한다.

한번 잡은 자리는 카지노 문을 닫을 때까지 자기 자리였다. 그야말로 올인(All In·가진 돈을 다 잃게 된 경우)이 되거나 자진해서 칩을 들고 다른 판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한번 잡은 자리를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설혹 잠시 자리를 뜨더라도 자리 주인이 칩을 그대로 둔 상태면 그 자리는 계속 그 사람의 것이었다. 한 자리에 두 명, 세 명이 함께 베팅을 하게 되니 강원랜드는 수익성 면에서 크게 유리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 때문에 3000만원의 보증금을 걸고 심사를 통과해야 출입할 수 있는 VIP룸은 이곳 죽돌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자본주의의 극단에 서있는 카지노는 이렇듯 철저히 사람을 차별한다.

▲ 강원랜드 슬롯머신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
A씨에게 슬롯머신으로 가보겠다고 하자 그는 젊은 친구를 한 명 불러 “이 분 B에게 모시고 가서 좋은 기계 잡아드리라고 해라”고 말했다. 한 슬롯머신 기계 앞에서 하릴없이 앉아 있던 B(26)는 피부에 핏기를 느끼지 못할 만큼 뽀얗다. B는 나를 이끌고 구석편에 있는 슬롯머신으로 가더니 “오신 지 오래 되셨느냐”면서 “기계는 주는 기계에만 주지 아무 거에나 주는 게 아녜요”라고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슬롯머신의 승률이 높은 기계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었다. B는 “500원짜리는 돈이 너무 금방 없어진다”면서 100원 단위로 베팅을 하는 기계 앞에 앉게 했다. 카지노에서 슬롯머신 앞에 죽치고 앉아 계속 버튼만 누르고 있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내가 앉을 자리 하나 없이 버글거리는 강원랜드의 그많은 죽돌이들 때문에 결국 ‘바보 같은 짓’을 하게 된 것이다.

“‘쇳발’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내 기계에 만원 지폐 두 장을 밀어넣고 B에게도 2만원을 넣어줬다. 아무리 100원짜리지만 9줄씩 한꺼번에 베팅을 하면 “삐비비비빙 뜨루룽”이라는 소리를 한 번 듣는데 900원씩이  날아가게 된다. 2만원이 다 사라질 때까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B는 조금씩이라도 이겨 그런대로 버티고 있었다. 내가 지폐를 몇 장 더 꺼내 넣자 B는 “아저씨는 ‘쇳발’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라고 했다. ‘쇳발’이란 테이블 게임의 ‘끗발’에 대응되는 말로 슬롯머신에서의 운을 뜻하는 용어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죽돌이들이 돈을 많이 가져온 ‘초보’들의 게임을 ‘지도’할 때 게임이 잘 풀리면 당연히 자신의 지도 덕분으로 치부하고,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반드시 다른 핑계거리가 있었다. 자기가 찍어준 슬롯머신의 승률이 신통찮으면 지금처럼 ‘쇳발’ 타령을 하고, 테이블 게임의 승률이 좋지 않으면 딜러들의 ‘농간’으로 몰아붙였다. 내가 만났던 한 죽돌이는 심지어 다이사이판에서도 대(大) 소(小) 양쪽의 판돈을 봐서 딜러가 쉐이커(Shaker·주사위를 담아 둔 용기)의 버튼을 살짝 누르느냐, 세게 누르냐에 따라 대, 소 어느 한쪽으로 어느 정도는 몰아갈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몇분 후 내 기계에서 ‘잭팟’이 터졌다. 그러나 그래봐야 10만몇천원이었지만 B는 “제가 기계는 잘 찍었죠”라고 말했다. 참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30분 정도가 지나자 내 슬롯머신에서는 돈을 더 넣으라는 메시지가 반짝거렸다. 돈 몇만원으로 2시간 넘게 슬롯머신을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것은 상당히 좋은 성적 같았다. 건너편에서 500원 단위의 슬롯머신을 하고 있는 어떤 남자는 줄잡아 50장은 돼 보이는 지폐를 쌓아놓고 거의 2~3분에 한 장씩 밀어넣고 있었다. 대형 잭팟이 터지지 않는 한 승률은 그 지폐 더미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끌 수 있느냐의 차이만 보여주게 될 것 아닌가.

▲ 테이블게임과 슬롯머신 모두 고객들로 가득찬 카지노 전경.
기계에서 일어서자 B는 “차나 한잔 하자”며 나를 카지노 중앙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라운지로 끌고 갔다. 선불로 내야 하는 커피값을 내가 내려하자 B 역시 A씨와 마찬가지로 나를 만류하며 자신의 플레이어 카드를 내밀었다. B는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는데 제 카드에도 제법 (적립금액이) 들어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빈털터리가 된 40대와 20대 두 죽돌이에게 밥과 커피를 모두 얻어먹었으니 첫날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B의 눈치를 살피며 젊은 나이에 이곳에서 죽돌이 노릇을 하게 된 이유가 뭔지를 물었다. 작년 여름부터 거의 1년째 죽치고 있는 B는 서울 한 유명 호텔 사원이었는데 친구와 함께 장사를 할 요량으로 회사를 그만뒀다가 놀이삼아 강원랜드를 찾았다. 처음 가져왔던 400만원을 첫날 다 잃었다. 누군가 다가와 돈을 쓰겠느냐고 물었다. 신용카드를 맡기고 400만원을 받아 다시 시작했는데 잃었던 돈을 다 찾고도 700만원을 더 땄다. B가 평생 동안 만져본 가장 큰 돈이었다.

문제는 빌린 돈을 갚고 신용카드를 찾아 집에 가야하는데 사채업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중에 있는 1500만원이라는 돈을 한 번 더 튀기면 굉장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돈은 물 흐르듯 빠져나갔다. 신용카드는 거덜나 신용불량자 대열에 올랐고, 친구든 친척이든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 온갖 이유를 대며 돈을 부쳐달라고 했다. 그 길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2억원을 날렸다는 B는 “그나마 저는 젊을 때 수업료를 지불했으니 괜찮은 셈이에요. A 아저씨 같은 중년들은 보통 5억~6억원씩은 다 날렸어요. 그들은 재기할 방법이 없잖아요”라고 했다. 나는 “무슨 방법으로 재기할 것이냐”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 고한읍 하천변에 늘어선 주택들. '죽돌이'들이 이곳에 월세방을 얻기도 한다.
후에 내가 만난 한 사채업자는 “죽돌이들에게 강원랜드는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꿈을 지켜주는 대상이기도 하다”면서 “집으로 돌아가면 당장 먹을 것도 없고 빚쟁이들 때문에 하루도 견딜 수 없는데 여기에서는 몇가지 요령을 익히고 안면몰수하면 그나마 살아갈 수는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 사채업자는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몇푼이라도 얻어서 다시 게임을 하고 잭팟을 터뜨릴 수 있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면서 “그 꿈이 사라지면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B는 “저는 게임을 보면 보여요. 차가운 주사위가 튀는 건 몰라도 그림이 있는 바카라 같은 경우에는 카드에서 오는 감이 있어요. 그림 좋은 곳에 베팅하면서 하루에 조금씩만 따겠다고 생각하면 분명히 딸 수 있어요. 10번에 7번 정도는 이길 수 있어요. 그건 수억원씩 집어 넣은 사람들 눈에만 보이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곳은 돈이 도는 곳”이라며 “형들(고참 죽돌이들)이 매달 내게 주는 돈을 다 계산해보면 한 300만원은 될 거예요. 호텔에서도 자고 형들과 함께 얻어 놓은 방에서도 자고 옷은 세탁소에 맡겨 놓고….”

그가 입고 있는 검은색 스웨터는 냉방이 잘되는 카지노에서만 머문다면 그리 덥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용불량자 300만명, 도박중독자 300만명이라는 기묘한 일치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지 씁쓸한 느낌이었다.

점심을 먹고 카지노에 들어가보니 도저히 평일 낮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전날 밤과 똑같이 붐볐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새벽 6시에 닫는다. 이날 아침 폐장 때까지 날밤을 새며 버텼던 나는 죽돌이들이 어디에 가서 자나 따라가 보려 했지만 자신들이 어디에서 자는지를 공개하는 것은 극도로 꺼렸다. 호텔방에 혼자 올라가 두꺼운 커튼을 치고 잠을 청했지만 슬롯머신의 삐빙거리는 환청소리만 들릴 뿐 좀처럼 깊은 잠이 들지 않았다. 수시로 울려대는 휴대폰 소리도 성가셨다. 죽돌이를 제대로 하려면 바깥세상에 알려진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세상과 절연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 낮과 주말 밤’ 별 차이 없어

카지노 안에 A씨, C씨 등이 보이지 않아 곧장 다이사이판으로 갔다. 전날 재미를 좀 봤고 비어있는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더블베팅을 하기 시작했는데 한 번 성공에 1만원씩 따는 게 성에 차지 않아 2만원부터 베팅을 시작한 것이 실수였다. 처음 한 판은 이겼지만 다음판부터 16만원을 거는 판까지 4판을 연속 져버렸다. 나는 일관되게 소쪽에 베팅을 했는데 계속 대만 나오는 것이었다.

다음판은 32만원을 베팅해야 하는데 당장 수중에 그만한 칩이 없었고 또 베팅 상한선이 30만원이라는 장애가 있었다. 강원랜드는 메인 카지노를 개장하면서 정부의 규제 때문에 베팅 상한선을 5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낮췄다. 지갑에 있던 지폐를 다 꺼내 딜러에게 칩을 사서 30만원을 맞췄다. 그걸 몽땅 걸면서 “이번에 이기면 2만원을 따지는 못해도 만회는 될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계산을 했다.

▲ 고한읍 전경. 메인 카지노 개장 후 상가 경기가 더 안좋아졌다는 불평이 일고 있다.
쉐이커에서 주사위가 튕겨졌을 때 강원랜드에 온 이후로 가장 격렬히 긴장됐다. 결과는 ‘6’. 소쪽이 이긴 것이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대, 소 어느 한쪽이 연속 5번 나올 확률은 2분의 1의 5제곱, 32분의 1, 3% 정도밖에 안되는데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당연히 소쪽에 불이 들어와 있어야 할 베팅판에 대, 소 양쪽 모두 불이 들어와 있지 않고, 딜러들이 대, 소 양쪽의 판돈을 모두 쓸어가버리는 것이었다. 옆 사람에게 ‘소’가 이긴 게 아니냐고 물어봤더니 “트리플이잖아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주사위 세 개가 모두 같은 숫자가 나오면 그 때는 대, 소를 따지지 않고 ‘트리플(triple)’ 이나 ‘애니 트리플(any triple)’에 건 사람에게 150배, 24배를 준다는 것을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쉐이커의 주사위들은 모두 2를 가리키고 있었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방으로 뛰어올라가 현금카드를 가지고 내려와 카지노 내의 ○○은행 자동인출기에서 통장에 든 돈을 모두 뽑았다. 공교롭게 강원랜드에 입점한 은행과 내 급여통장이 있는 은행이 같은 곳이었다. 돈을 찾아 급히 같은 다이사이판으로 달려가서 전적표를 살폈더니 트리플이 나온 후 연속 세 판이 소였다. 또 한 번 돌아버릴 것 같았다. ‘돈만 있었으면 30만원씩 두 번만 더 갔으면 본전은 했을 것 아닌가’하는 억울함이 마구 밀려왔다. 인출한 돈으로 모두 칩을 사긴 했지만 곧바로 소쪽에 베팅할 수는 없었다. 이미 리듬을 잃었고, 또 소가 나온다는 자신감이 전혀 없었다. 대냐 소냐, 이 단순한 2분의 1 게임에 이렇게 흔들리는가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일단 자신이 없어 몇 판을 그냥 지켜봤더니 네 판이 더 소가 나왔다. 대, 소 중 한쪽이 연속 7번 나올 확률은 2분의 1의 7제곱, 즉 128분의 1, 1%도 안된다. 그러나 그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곳이 카지노다. 한쪽이 연속 나올 때 그쪽으로 계속 베팅해 돈을 따는 것을 죽돌이들은 “줄을 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줄이 설 것처럼 보이는 순간을 “그림이 좋다”고 말한다. 바카라나 다이사이, 룰렛 등에서 게임 결과를 두 가지 색 볼펜으로 열심히 적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이 줄을 찾는 것이다. 어제 B가 “나에게는 그림이 좋은 게 보인다”고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정말 보일까 하는 깊은 회의가 밀려왔다.

줄을 한 번 거꾸로 타고, 타야 할 시간을 칩이 떨어져 놓쳐 버린 나는 대, 소만 해가지고는 회복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만원을 따기 위해 30만원 이상을 베팅해야 하는 더블베팅은 ‘빈대 잡자고 대포 쏘는 격’인 비합리적인 짓이란 결론을 내렸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후부터는 몇 배의 배당금을 주는, 주사위 셋을 합친 숫자를 맞히는 게임과 35배까지 배당을 주는 ‘룰렛’판을 오가며 ‘정상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했다. 그러나 밤이 좀 깊었겠구나 싶을 즈음. 마지막 남은 자잘한 칩들을 룰렛판에 모두 쓸어 넣으면서 오히려 차분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올인이 되고 카지노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시계를 봤더니 밤 11시30분.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잠을 잘 자지 못해 낮에는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는데 밤이 되자 정신이 맑아지고 몸도 회복되는 것 같았다. 한끼밖에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 지난 5월 22일 오후 강원랜드 주차장. 평일 낮인데도 빈자리가 없다.
카지노 건물 앞에서 담배 몇 대를 연방 피우고 있자 작은 손가방을 든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다가와 “좀 도와드릴까요” 했다. 돈을 빌려 쓰라는 얘기였다. 아까 다이사이판에서 연속 대가 나온 후 정말 소가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을 때 바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면 일단 쓰고 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다행이겠지만 나는 신용카드를 모두 빼두고 현금 몇십만원만 찾아 ‘이것이면 버틸 수 있겠지’ 하면서 이곳에 왔다. 내가 “신용카드도 자동차도 안 가져왔는데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묻자 그는 “집에다가 신용카드를 보내라고 하라”면서 “이곳은 모두 전당포 업자들이기 때문에 카드나 돈 되는 물건 없으면 도와주기 힘들다”며 자리를 떴다.

진짜 친구에게 전화를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구차할 뿐 아니라 몇십만원으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답답한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신용카드를 가져와 현금서비스라도 받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 월급날 생각이 났다. 25일이 일요일이니 23일에는 통장에 돈이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한가닥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카지노로 들어가 B를 찾았다. 그는 이날도 슬롯머신 기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섰을 때 어떤 20대 남자와 한참 얘기를 하고 있다가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들에게 칩을 몇 개 얻어 그 20대 남자에게 넘겨줬다. 내막을 알고 보니 일수(日收)를 찍는 것이었다. 이곳의 일부 사채업자는 ‘공인’된 죽돌이들에게 담보없이 돈을 빌려주는 일수놀이를 하고 있다. 절대 많은 돈이 아닌 100만원만 주고 매일 4만원씩 갚도록 해 한 달 동안 일수를 걷는다. 그러면 월 20%의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집도 절도 없는 죽돌이들이지만 B의 말대로 “돈이 도는 곳”이기 때문에 매일 4만원은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B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저쪽 편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잭팟이 터졌다. 5080만원이라는 숫자가 전광판에서 번쩍이고 있었고 어떤 40대 사내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B는 “또 모르는 사람”이라면서 “잭팟은 꼭 수천만원씩 기계에 넣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고, 항상 지나가던 아줌마가 몇 만원 넣었을 때 나온다”고 푸념하듯 말했다. 어떨때는 수백만원 넣은 사람이 몇만원 남아 있는 기계의 버튼이 계속 눌러지게 지폐를 꽂아 두고 화장실에 간 사이 다른 아줌마가 몇 만원 넣었을 때 터져 싸움이 나기도 한다고 했다. B는 “강원랜드의 잭팟은 수십억, 수백억원씩 터진다는 외국에 비하면 너무 액수가 적다”면서 “매일 하는 사람도 아닌 뜨내기가 터뜨리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일부러 (카지노에서) 쏘아 주는 거다”라고 주장했다.

▲ 강원랜드 카지노 지하 라운지의 새벽. 게임에 지친 사람들이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B와 함께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폐장 후 사우나에 갔다. 이곳 사우나는 24시간 운영하지는 않지만 카지노가 폐장하는 시간부터 문을 열고 또 죽돌이들은 밤에 잠을 자는 게 아니기 때문에 눈을 붙이는 데 불편함은 없다. 샤워를 하고 수면실에 누웠는데 조금 지나자 B가 일어나 먼저 나가겠다고 했다. 바카라 테이블의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아침 8시 반부터 카지노 정문 앞에 줄을 서서 10시에 문이 열릴 때 들어가야 테이블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도서관 자리도 아니고 카지노 자리를 몇 시간씩 매일 줄을 서야 하는 곳은 모르긴 해도 강원랜드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B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노란색 칩(10만원권) 하나를 얻기로 하고 줄을 서주기로 했을 것이다.

“잭팟은 꼭 뜨내기에게 터진다”

오후 사우나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고한읍으로 내려갔다. 낮이고 밤이고 북적거리는 카지노와는 달리 고한읍은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숙소를 옮겨볼까 하고 여관에 들어갔더니 주인은 울상을 지었다. 메인 카지노가 생긴 후 장사가 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카지노 안에서 숙식이 다 되는데 누가 여기까지 내려오겠느냐”면서 “그런 판국에 스몰 카지노를 호텔로만 운영하면서 예전에 15만원 이상 받던 방을 지금은 5만원이면 잘 수 있게 해놨고, 사우나도 5000원 받는데 누가 시설 안좋은 이곳에 오겠느냐”고 푸념했다.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이곳 상인들 모두 짐 싸서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제법 돈을 번 전당포 업자들도 게임에 빠져 폐인이 돼버린 경우도 많다고 했다. 여관방을 얻어 죽돌이들과 친해지려는 것은 애당초 그른 생각이었다.

고한읍 시장통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좁은 하천변으로 슬럼 같은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강원랜드의 죽돌이들은 카지노 호텔방에서 더이상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 되면 100만원 이하의 보증금에 월세 20만~30만원 받는 이런 집들의 월세방을 5~6명이 함께 얻어 기거한다. 월세방에서도 쫓겨날 정도가 되면 좀 형편이 나은 죽돌이에게 빌붙어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고, 그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따돌림 받는 신세가 되면…. 한 사채업자가 “지난 2월 고한읍 하천 다리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 죽돌이 청년이 있었는데 신문에 한 줄 나지도 않았다”고 하던 말이 얼핏 떠올랐다.

카지노로 돌아와 하릴없이 한두 바퀴를 돌고 있는데 A씨가 반색을 하며 어깨를 쳤다. 그는 바카라판에 앉은 C씨에게 데려가 내게 C씨의 게임을 도와주라고 했다. 도우라는 것은 다름아닌 C씨의 칩을 내 것인양 들고 C씨가 베팅하는 곳에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었다. 좀 굴욕적이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C씨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베팅 금액을 올리는 효과를 보기 위해서다. 한 사람은 한 판에 30만원 이상을 베팅하지 못하게 돼 있는데 그 정도로는 양에 차지 않으니 대리인을 내세워 자신과 똑같이 베팅하게 하는 것이다. C씨는 위층 VIP룸에서 주로 게임을 하는데 많이 잃은 상태에서 날짜 만료(VIP룸은 한 달에 15일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가 되는 바람에 격앙돼 있었다. 나와 A씨, 또 다른 한 명이 동시에 C씨의 칩으로 30만원씩을 베팅하니까 결국 한 판에 120만원씩을 거는 셈인데도 “이 정도로 해선 만회가 안된다”며 씩씩거렸다.

연속 5판을 이길 때도 있었고 타이(Tie·뱅커와 플레이어쪽의 카드 숫자가 일치하는 것)를 두 번씩이나 맞춰 8배의 배당금을 받는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 얼핏 1000만원 이상 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C씨 역시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칩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젊은 친구 하나를 급하게 부르더니 “돈 좀 빌려오라”고 한 후 밑천이 모자라면 게임이 안 된다면서 테이블을 일단 떴다. C씨는 차를 잡혀 500만원을 수혈했지만 나는 그가 별로 이길 것 같지 않았다. 다리가 너무 아파 C씨에게 그만 가보겠다고 하자 10만원짜리 칩 하나를 주면서 “처음 잃은 사람은 죽상을 하고 다니지만 며칠 지나면 이내 적응해 깨끗하게 하고 다니게 된다. 힘을 내라”고 격려해 줬다.

10만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이제는 너무 적은 돈이었다. 가장 베팅액이 적은 상한선 10만원짜리 블랙잭판을 계속 기웃거리다 1000~2000원씩 베팅하는 사람이 둘셋 섞인 테이블을 찾아냈다. 내가 강원랜드에 와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베팅 규모다. 외국 카지노에서는 최소베팅액이 고객들에게 중요한 기준이지만 이곳은 최고베팅액이 더 중요한 기준이었다. 상한선 30만원짜리 테이블이 10만원짜리보다 훨씬 인기가 있었고, 최소베팅액 1000원을 베팅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이곳의 죽돌이들은 메인 카지노로 옮기면서 베팅상한액을 낮춘 것을 ‘본전 찾기 어렵게 만드는 카지노의 횡포’라고 투덜거릴 정도다.

한 판에 1000원씩 베팅하는 60대 아주머니 뒤에 서서 3000~4000원씩 베팅하기 시작했다. 계속 잃자 아주머니가 뒤를 돌아보며 “1000원씩만 가요. 창피해하지 말고”라고 했다. 그러나 똑같은 게임을 하지만 돈을 거는 금액에 따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었다. 상한선인 10만원씩 계속 베팅하는 사람들은 1000원짜리 베팅을 하는 아주머니들을 “된장들”이라고 공공연히 무시하는 게 눈에 보였다. 심지어 게임을 지면 그 ‘된장들’에게 “받아야 할 카드를 받지 않았다” 혹은 “받지 말아야 할 카드를 받았다”고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그 60대 아주머니는 “젊은 것들이 싸가지가 없어서…. 내 동생이 30만원짜리 바카라 게임을 하고 있는데 시간 죽이려고 이러고 있는 거야. 돈 많이 잃는 게 자랑이야?”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어떤 아저씨는 괜히 휴대폰을 꺼내 “내일 바카라 30다이에 자리 좀 잡아줘”라고 전화를 거는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기도 했다. 돈도 잃고 자존심도 상하는 정말 이상한 카지노가 폐광 터에서 성업 중이다.

금요일. 급여통장에 돈이 들어와 있겠지만 찾지 않고 버티기로 했다. 베이지색 겨울 스웨터를 입은 채로 블랙잭판에서 1000원씩만 베팅하다가 이내 칩이 떨어져 또 어딘가에서 1만원짜리를 얻어 오고 하던 50대 중반 D씨와 저녁을 먹었다. 그는 태백 개인택시 기사였는데 손님을 태우고 왔다가 호기심에 카지노에 몇 번 들른 것이 택시 팔고, 집 팔고, 집에도 돌아갈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하게 했다. 그는 “강원랜드는 중독성이 너무 강한 곳”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줬다.

손님 태우고 왔다 ‘죽돌이’ 된 택시 기사도

“어떤 젊은 여자 네 명이 강원도에 놀러왔다가 호기심에 강원랜드에 들렀다. 세 명은 돈을 모두 잃었는데 우연히 한 명은 기계에서 몇십만원을 땄다. 그 여자는 친구들이 가자는데도 돌아가지 않고 남았다가 영원히 못 돌아가는 신세가 돼버렸다. 그 여자가 어떤 남자를 호텔로 유인해 약을 타서 먹이고 9000만원을 훔쳤다. 그런데 바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카지노에 와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바로 잡혀 구속됐다.”

강원랜드는 메인 카지노를 개장하면서 ‘어드벤처 팰리스’라는 탑승·관람 시설을 만들고 아침 저녁 두 번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는 극장도 만들었지만 그곳은 별로 사랑받는 시설이 아니었다. 대도시에 있는 보통의 놀이시설보다 나을 게 전혀 없는 그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가족을 이끌고 정선까지 갈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있겠는가. 

한 번 가기도, 돌아오기도 힘든 이 오지(奧地)의 도박장은 도박 중독자들이 세상과 절연하고 죽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어린 시절 가장 훌륭한 테크니션이라며 좋아했던 권투선수 P씨나,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A씨 등도 이곳의 죽돌이라는 것은 여기서는 상식이었다. 내가 P씨를 만나기 위해 죽돌이 몇 명에게 묻자 “P형 요 며칠 집에 갔다 온다고 했는데요”라고들 했다. 80년대 인기가수 L씨가 이곳에서 망가졌다는 것도 흔하게 흘러다니는 얘기였다.

D씨는 “쓴맛이든 단맛이든 이곳 맛을 본 사람은 여기서 2만~3만원 얻어 연명할 수는 있어도 결코 일당 5만~6만원짜리 일은 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카지노 밖 어디론가 사라졌다.

토요일. 주말이라 더욱 북적대긴 했지만 주말이어서 더 혼잡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을 정도였다. 보이던 사람은 늘 그대로 있었다. 다음날 일요일 날이 훤히 새고 카지노가 문을 닫자 다시 사람들은 쏟아져 나와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사우나로 식당으로 술집으로 흩어져 갔다.

나는 가방을 싸서 서울로 향하면서 돈 얼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구경삼아라도 오고 싶지 않았다.

카지노의 게임들

★★ 블랙잭(Blackjack)

카드 숫자의 합이 21이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높은 수의 합이 나오는 쪽이 이긴다. A는 1 또는 11 어느쪽으로도 이용할 수 있어 가장 선호하는 카드고 J, Q, K는 10, 그 외의 카드는 숫자대로 계산되며 무늬는 무시된다. 고객은 카드 두 장으로 21을 맞추면 ‘블랙잭’이 돼 베팅금액의 1.5배까지 받을 수 있고, 먼저 두 장의 카드를 받은 후 원하는 만큼 더 받을 수 있지만 21이 넘게 되면 바로 진다. 딜러는 카드의 합이 17 이상이 될 때까지 의무적으로 카드를 더 받아야 한다. 고객은 처음 두 장의 카드가 같은 가치의 숫자인 경우 처음 베팅한 금액만큼을 추가로 걸고 패를 나눌 수 있으며(Split), 처음 두 장의 카드 합과 관계없이 한 장의 카드만 추가로 받는다는 조건으로 최초 베팅액 이하의 금액을 추가로 베팅할 수도 있다(double down).

★★ 바카라(Baccarat)

카드 합의 끝자리 숫자가 점수가 되며 끝자리가 높은 쪽이 이긴다. 고객은 Player와 Banker 중 하나를 택하여 베팅하며, 양쪽의 끝자리가 같을 때 이기는 Tie에는 추가로 베팅할 수 있다. Player쪽이 이기면 베팅한 금액만큼, Banker쪽이 이기면 베팅액의 95%, Tie가 나오면 베팅액의 8배를 받는다. 추가 카드를 주느냐 마느냐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행해지며 고객이 선택할 수 없다.

★★ 다이사이(Tai-sai·大小)

그림과 같은 다이사이 게임판에 베팅을 하고 쉐이커(shaker·주사위 용기)에 들어있는 세 개의 주사위를 튕겨 일치하면 정해진 배당률에 의해 배당받는 게임. 대·소(大小)나 홀짝(odd·even)의 한쪽이 이기면 베팅한 금액만큼 배당을 받고, 주사위 수의 합, 예를 들어 6,5,3이 나왔을 경우 14에 베팅을 했으면 12배를 받는 등 최고 150배까지 배당을 받는다.

★★ 룰렛(Roulette)

0과 00, 그리고 1에서 36까지 적혀있는 룰렛 휠에 룰렛 볼이라는 작은 흰공을 굴려 떨어지는 숫자와 색상을 예측해 맞히는 게임. 숫자를 정통으로 맞히면 35배의 배당을 받고, 두 숫자의 가운데 선에 가서 맞히면 17배, 네 숫자가 물린 선에 가서 맞히면 8배, 검은색과 붉은 색, 짝수와 홀수, 1~18과 19~36 등의 어느 한 곳을 맞히면 베팅한 만큼 배당을 받는다.

★★ 빅 휠(Big Wheel)

휠을 돌려 멈추었을 때 휠 위의 가죽띠가 멈출 곳을 예측하여 맞히는 게임. 휠에 배당률이 표시돼 있으며 당첨금액은 최고 40배.

정선 = 김덕한 주간조선 기자

댓글 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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