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파스칼은 현대통계학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세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였지만 '파스칼의 정리'를 증명하여 기하학에 공헌하였고, 물리학자와 철학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수녀가 된 여동생 자클린의 영향을 받아 수도원에서 교파 간의 사상 논쟁에 휘말리며 종교사상가로도 널리 알려졌지만, 3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파스칼은 한때 파리에서 귀족들과 어울리며 사교계에서도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도박이었다. 확률론에 대한 관심도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도박에서 딴 돈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문제로 고민하면서 확률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도박의 막판에는 항상 딴 사람은 적고 잃은 사람은 많은데, '공정하게 분배'하는 방법만 있다면 해피엔딩이 되지 않겠는가. 금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즈 역시 확률이 지배하는 보험회사 사장으로 명성을 날리며 <확률론>을 썼으니, 천재들의 세계는 일맥상통하는 모양이다.
도박장에서 과연 '공정한 분배'가 가능할까? 이는 어떻게 배팅했어도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건 돈을 잃지 않게 하는 것으로, 위험 중립적인 결과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런 논리에 따라 개발된 위험 중립적인 상품을 옵션(option)이라고 한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금융의 파생상품들이 이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도박꾼은 원래 위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서, 중립적인 옵션은 오히려 카지노가 선택한다. 그래서 옵션 때문에 카지노는 무일푼으로 시작하고도 절대 망하지 않는다.
어떻게 가능할까? 동전을 차례로 세 번 던져서 모두 앞면이 나오면 100만원을 따는 노름을 생각해보자. 가능한 결과는 앞·앞·앞, 앞·앞·뒤, 뒤·앞·뒤, 뒤·뒤·뒤, 뒤·뒤·앞,뒤·앞·뒤, 뒤·앞·앞이므로 이길 확률은 8분의 1이 된다. 따라서 판돈 (기대값)은 100만원의 8분의 1인 12만 5,000원이 된다. 카지노가 아무런 대책없이 판을 벌였다가 누군가 앞·앞·앞이 나와버리면 부도가 날 수밖에 없다. 과연 카지노가 요행을 바라며 8분의 1의 확률만 믿고 영업을 할까?
카지노는 안전하게 영업할 수 있는 위험 중립적인 옵션을 만든다. 우선 처음 던지는 노름꾼 A에게 동전의 앞면을 걸고 12만 5,000원을 판다. 한편 고객 B에게는 옵션 상품으로 동전을 한 번 던질 때마다 끝나버리는 반대 계약을 한다. A에게 앞면을 팔았으니, B에게는 당연히 뒷면을 12만 5,000원에 팔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동전을 던지기도 전에 두 사람에게서 받은 판돈이 벌써 25만원 이나 된다. 이제 동전을 던졌다. 결과는 앞면이다. 카지노는 A로부터 받은 12만 5,000원이 있고, B에게는 이겼으니 역시 12만 5,000원을 수입으로 잡아 25만원을 확보한다.
두 번째에는 B에게 뒷면이 나오면 25만원을 주는 옵션을 걸 수 있다. 내기에서 진 B는 이번에는 뒷면이겠지 하는 '도박사의 오류'에 빠져 25만원을 건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앞면. 그래서 카지노의 수입은 50만원이 된다. 드디어 마지막 세 번째, B는 이제 뒷면에 50만원을 걸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세 번째 역시 앞이 나왔다. 세 번 모두 앞면이 나왔으니, 카지노는 A에게 100만원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걱정할 건 없다. 세 번째 옵션 상품을 B가 50만원에 사서 이미 100만원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카지노는 돈 한 푼 안 내고 '일'을 처리한다. A에게 준 100만원은 사실은 반대계약을 하는 B가 낸 돈이다. B와 같은 사람 10만명이 10원씩 걸도록 한다면 한 사람이 잃은 돈은 적게 하면서 도박을 진행할 수 있다. 위험을 많은 사람에게 분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을 거듭할 때마다 판돈을 올려야만 위험에 대해 중립적이 된다.
카지노는 수없이 많은 옵션을 만들어서 손해 안 보는 장사를 할 수 있다. 노름꾼들이여, 카지노에 도전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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