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 딜러 고용, 공짜칩으로 블랙잭 등 카지노 게임
직장인 몰려있는 강남·여의도 등서 성업… 섹시바와 겸업도
- 지난 2월 11일 밤 서울 여의도. 길거리 트럭에 설치된 광고판에 ‘아직도 정선 카지노에 가십니까?’라고 쓰인 성인오락실 홍보용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구증권타운을 지나 국회의사당 건너편에 위치한 ‘카지노바’를 찾았다. 바깥에서 볼 때는 맥주나 양주를 파는 여느 바와 다를 바
없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 왼편 ㄱ자로 길게 늘어선 바 중앙에 카지노용 테이블 3개가 놓여 있었다. 전문 딜러복장의 여성 딜러들이 ㄷ자로
배치된 테이블 안쪽에 자리잡고 각각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입구 오른쪽에는 타원형으로 생긴 바가 세 개 있었다.
카지노 하기 위해 일부러 술 시키기도
카지노바에서 카지노 게임을 하기 위해선 칩이 필요하다. 칩은 보통 술을 시킨 액수에 해당하는 만큼 받는다. 일부 업소는 얼마 이상 주문해야 칩을 준다는 규정을 두기도 한다. 보통 10만원 정도가 기준이다. 10만원 상당의 술과 안주를 주문하려면 자연히 양주를 시키게 된다. 회사원 유모(29)씨는 “맥주나 한잔 하려고 왔다가 카지노 하려고 양주를 시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카지노바에서 사용되는 칩은 돈으로 사거나 바꿀 수 없다. 대신 얼마 이상 모을 경우 양주 1병을 준다든지 술값에서 얼마를 깎아준다든지 하는 식의 ‘당근’을 제공한다. 하지만 혜택을 받기 위한 적립금액이 보통 100만원 이상이어서 수혜자는 별로 없는 실정이다. 딜러 쪽이 확률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는 카지노 게임에서 일반인이 10배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카지노바에서 손님들은 술을 시킨 금액만큼 칩을 받을 수 있다.
카지노바는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되기 때문에 현재 몇 개의 카지노바가 영업 중인지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는다. 카지노용품을 판매하는 업체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붐을 이루기 시작해 젊은 직장인이 몰려 있는 강남과 여의도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이제는 바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술집에 카지노 시설을 들여놓는 것에 대해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돈이 오고가지 않는 한 규제할 근거는 없을 것”이라며 “서비스 차원에서 술집에 당구대를 가져다 놓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게임의 종류는 세 가지. 블랙잭, 룰렛 그리고 바카라다. 바텐더 임모(여·26)씨는 “비교적 일반인에게 친숙하고 배우기가 쉽기 때문에 이 세 종목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카드게임인 블랙잭과 바카라는 1만원 단위로 배팅을 할 수 있었고 룰렛은 1000원 단위로도 배팅(돈을 거는 것)이 가능했다. 밑천이 미천(微賤)했기 때문에 싼 값에 즐길 수 있는 룰렛으로 시작했다.
돈 따면 술값 깎아줘
가랑비에 옷 젖듯 칩을 하나둘 잃다보니 1000원짜리 100개로 바꿔놓은 칩이 30분 만에 바닥이 났다. 다른 게임을 해볼 사이도 없이 룰렛에서 가지고 있던 칩을 모두 날렸다. 자리로 돌아오니 바텐더가 카지노용 칩이 달린 열쇠고리 하나를 가져다줬다. 칩에는 작은 글씨의 영어로 ‘모험하지 않고는 얻지 못하리라(Nothing ventured, Nothing gained)’라고 적혀 있었다. 성공한 벤처기업가의 금언인 듯한 문구가 이곳 상황에 딱 들어맞았다.
▲ '룰렛' 게임기구
이곳은 칩을 얻기 위해 얼마 이상 주문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다. 칩을 100만원 어치 딸 때마다 술값을 3만원씩 깎아준다. 맥주세트를 시키니까 바텐더가 10만원 짜리 칩 1개를 건네줬다. 바텐더 조모(여·22)씨는 “특별히 서비스로 더 드리는것”이라고 말했다. 장사가 잘 되냐고 묻자 조씨는 “10시 넘어서부터는 카지노 테이블에 자리 맡기 힘들 것”이라며 “남자들이 좋아하는 3가지인 술·여자·도박을 조금씩이라도 맛볼 수 있게 해놓은 게 성공비결인 것 같다”고 분석까지 내놓았다.
또다시 룰렛 테이블로 갔다. 시작이 좋았다. 처음 다섯 번 동안 17배짜리 배당을 2번이나 맞은 것이다. 하지만 칩을 한두 개씩밖에 걸지 않아 대박의 기회는 소박하게 지나갔다. ‘Nothing ventured, Nothing gained’라고 쓰인 열쇠고리의 ‘금언’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자 쌓아놓았던 칩이 한 줄, 두 줄 사라져갔다. 칩이 바닥나기 전에 종목을 블랙잭으로 바꿨다. 블랙잭은 카드 숫자의 합계가 21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게임으로 규칙이 간단해 누구나 한두 번만 해보면 쉽게 룰을 익힐 수 있다.
생각보다 잘 풀렸다. 어느 순간 칩을 세어보니 1만원짜리 칩이 15개로 불어났다.
▲ 카드게임인 '바카라'
10시가 넘어서자 조용했던 바가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혼자였던 블랙잭 테이블에 또다른 손님이 와서 앉았다. 회사원 손모씨는 자리에 앉더니 딜러에게 “100만원어치만 달라”고 말했다. 딜러는 장부를 꺼내더니 손씨의 이름을 확인하고 칩 100만원어치를 내줬다. 장부에 적힌 손씨의 ‘예금액’은 350만원이었다. 딜러에게 더 많은 금액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느냐고 묻자 “가장 많은 손님은 5000만원 정도 쌓아놓고 있다”며 “어느 정도 칩이 쌓이면 배팅금액이 커져서 목돈을 모으기가 훨씬 쉽다”고 말했다.
손씨에게 ‘큰돈’을 모은 비결을 물었더니 “블랙잭은 딜러 한 명을 상대로 여러명(최대 8명)이 게임을 벌이기 때문에 게임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리더를 만나 딜러를 압박하면 금방 목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잃는 것도 한순간”이란 말도 덧붙였다. 손씨는 훌륭한 리더가 아니었다. 손씨 친구와 또다른 손님까지 가세해 딜러를 압박했지만 기자는 10분도 안 돼 칩을 모두 날렸다.
자리로 돌아와 칩을 모두 잃었다고 했더니 바텐더가 칩이 필요하면 조금 더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웃으며 “공짜로 칩을 나눠주면 누가 술을 더 시키겠냐”고 했더니 비키니를 입은 바텐더는 “카지노에 흥미를 가진, 처음 온 손님들한테만 특별히 더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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